서울 도심 재개발 현장을 들여다보다 보면, "왜 이렇게 오래 걸리냐"는 말이 절로 나옵니다. 제가 직접 서울시내 한 노후 저층 주거지역의 정비사업 추진 과정을 지켜봤을 때도 그랬습니다. 정비구역 지정 단계에서만 6년이 넘게 발이 묶여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서울시의 신속통합기획이 적용되고 나서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뭐가 그렇게 바뀐 건지, 지금부터 풀어보겠습니다.
조합방식, 왜 이렇게 느린 걸까
솔직히 이건 처음엔 예상 밖이었습니다. 재개발이 느린 건 알았지만, 정비구역 지정 하나에 5년이 걸린다는 사실은 직접 현장을 보기 전까지는 실감이 안 됐습니다.
현행 주택 정비사업의 기본 틀은 조합(組合) 방식입니다. 여기서 조합이란 해당 구역의 토지나 건물 소유자들이 직접 시행자가 되어 사업을 추진하는 구조를 말합니다. 1983년 합동 재개발 제도가 도입되면서 본격적으로 자리를 잡았고, 토지 소유자가 수용 보상비만 받고 떠나는 방식이 아니라 사업 이익을 직접 나눠 갖는다는 점에서 우리나라 도시화를 빠르게 이끈 제도적 공로가 분명히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조합원 각자의 이해관계입니다. 더 높이, 더 크게 지어 수익을 극대화하려는 조합과, 기반시설 확보와 도시 공공성을 요구하는 지자체 사이의 마찰이 길게는 수년씩 이어집니다. 제가 지켜본 그 구역도 층수 제한 문제 하나로 조합과 지자체가 4년 가까이 평행선을 달렸습니다. 조합원들끼리의 내부 의견 조율까지 더해지면 사업은 계속 표류하게 됩니다.
기부채납(寄附採納)이라는 개념도 여기서 충돌 원인이 됩니다. 기부채납이란 사업 시행자가 도로, 공원, 학교 부지 같은 공공시설 용지를 지자체에 무상으로 제공하는 것을 말합니다. 지자체 입장에서는 당연히 요구할 수밖에 없고, 조합 입장에서는 수익을 깎아먹는 요인이니 협상이 쉽게 끝날 리 없습니다.
- 서울시 정비사업 제안부터 입주까지 평균 20년 이상 소요
- 정비구역 지정 단계만 평균 약 5년 걸림
- 조합 vs 지자체 간 사업성·공공성 충돌이 핵심 지연 요인
- 조합원 간 내부 이견 조율도 별도의 시간 소모 요인
신속통합기획, 정비구역 지정을 절반으로 줄인 방법
제가 직접 관찰한 그 구역이 신속통합기획 대상지로 선정됐을 때, 솔직히 처음엔 반신반의했습니다. 공공이 개입한다고 해서 뭐가 달라지겠나 싶었거든요. 그런데 실제로 달랐습니다.
신속통합기획의 핵심은 공공이 주민 제안 초기 단계부터 직접 뛰어들어 정비계획을 함께 만든다는 데 있습니다. 총괄건축가(MA, Master Architect)가 투입됩니다. 여기서 MA란 단순한 설계 자문을 넘어서, 도시 공간의 큰 그림을 그리면서 조합·지자체·주민 사이의 이견을 조율하는 역할을 맡는 전문가를 말합니다. 저는 이 역할이 생각보다 훨씬 중요하다는 걸 현장에서 확인했습니다. 기술적인 조언이 아니라 '갈등 중재자'에 가까운 역할을 하거든요.
통합 심의(統合審議)라는 절차도 결정적인 차이를 만들어냅니다. 통합 심의란 도시계획·건축·교통·환경 등 각기 따로 진행되던 부서별 심의를 한 번에 묶어서 처리하는 방식입니다. 이전에는 부서마다 돌아가며 검토하느라 시간이 배로 걸렸는데, 이걸 동시에 처리하면서 의사결정 속도가 눈에 띄게 빨라졌습니다.
결과는 수치로 나옵니다. 평균 5년이 걸리던 정비구역 지정 기간이 신속통합기획 적용 후 평균 2년 7개월로 단축됐습니다(출처: 서울특별시). 목동 6단지는 1년 9개월, 여의도 대교아파트는 단 11개월 만에 정비구역 지정을 마쳤습니다. 미아동 일대는 34년간 묶여 있던 고도지구 높이 규제를 선제적으로 완화해 사업의 물꼬를 텄고, 상계동 일대는 용적률(容積率) 인센티브를 적극 활용했습니다. 용적률이란 대지 면적 대비 건물 연면적의 비율로, 이 수치가 높을수록 더 많은 세대를 지을 수 있어 조합원 1인당 분담금이 낮아집니다. 제 경험상 이 용적률 인센티브가 조합원들의 반발을 잠재우는 데 가장 실질적인 효과를 냈습니다.
주택공급 속도를 높이려면 아직 해결해야 할 것들
신속통합기획이 효과적인 건 제 경험으로도 인정합니다. 그런데 제 경우엔, 정비구역 지정 이후가 오히려 더 복잡해질 수 있다는 생각을 지우기가 어려웠습니다.
공공이 기획 단계에서 그린 청사진이 강하게 남아 있으면, 시장 상황이 바뀌거나 조합원 구성이 달라졌을 때 설계 변경 과정에서 또 다른 갈등의 씨앗이 될 수 있습니다. 공공의 개입이 속도를 높여주는 동시에, 민간의 유연한 의사결정을 제약하는 양면성이 있다는 뜻입니다. 이런 우려를 가진 분들도 있는데, 저는 이게 단순한 기우는 아니라고 봅니다.
성균관대 건축학과 김지엽 교수도 지적했듯이, 정비구역 지정 이후 단계에서도 적극적인 공공 지원이 필요하다는 점은 분명합니다(출처: 매일경제 기고). 재정 지원 강화, 조합 이외의 시행자 도입, 금융기법 다양화 같은 과제들이 후속으로 따라와야 신속통합기획의 효과가 입주 단계까지 이어질 수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 지금 신속통합기획은 '입구 전략'으로서는 잘 작동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입구가 빨라졌다고 해서 전체 여정이 짧아진 건 아닙니다. 정비구역 지정 이후부터 착공, 준공, 입주까지 남은 구간에서 공공 지원이 어디까지 이어질 수 있는지가 진짜 관건이라고 생각합니다. 민간 주도의 유연성을 살리면서 공공 지원의 실효성을 높이는 균형점, 이걸 찾는 게 지금 이 제도의 숙제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신속통합기획은 어떤 구역에 적용되나요?
A. 서울시가 주택 공급 필요성이 높다고 판단한 노후 저층 주거지역이나 재개발 추진이 장기간 지체된 구역을 대상으로 선정합니다. 주민이 먼저 제안하고, 서울시가 심사를 거쳐 대상지로 지정하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모든 재개발 구역이 자동으로 적용되는 건 아닙니다.
Q. 신속통합기획을 받으면 조합이 설계를 마음대로 바꿀 수 없나요?
A. 기획 단계에서 공공과 함께 만든 정비계획이 이후 설계의 기준선 역할을 하기 때문에, 조합이 임의로 큰 폭의 변경을 추진하면 추가 심의 절차가 필요해집니다. 공공의 개입이 속도를 높여주는 동시에 민간 유연성을 일부 제약할 수 있다는 점은 실제로 현장에서도 논의되는 부분입니다.
Q. 정비구역 지정 기간이 얼마나 단축되나요?
A. 기존 방식으로는 평균 5년 정도 걸리던 정비구역 지정이 신속통합기획 적용 후 평균 2년 7개월로 줄었습니다. 목동 6단지는 1년 9개월, 여의도 대교아파트는 11개월이라는 사례도 있습니다. 단, 구역마다 조건이 다르기 때문에 모든 경우에 같은 속도를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Q. 총괄건축가(MA)는 어떤 역할을 하나요?
A. MA, 즉 총괄건축가는 사업 전체의 도시 설계 방향을 잡고 조합·지자체·주민 간의 이견을 기술적·공간적 관점에서 조율하는 역할을 맡습니다. 단순 설계 자문이 아니라 갈등 조정과 의사결정 효율화에 실질적으로 기여하는 전문가로, 신속통합기획의 속도 단축에 핵심 역할을 합니다.
결론
정리하면, 신속통합기획은 수십 년간 고착된 조합 방식의 구조적 지연 문제를 공공의 선제적 개입으로 풀어낸 현실적인 돌파구입니다. 정비구역 지정 기간을 절반 가까이 줄인 수치가 이를 증명합니다. 제가 직접 지켜본 사례에서도 6년 가까이 멈춰 있던 사업이 2년 만에 구역 지정을 마치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다만 제 경험상, 이 제도가 진짜 빛을 발하려면 정비구역 지정 이후 단계까지 공공 지원이 끊기지 않아야 합니다. 기획 단계의 청사진이 이후 시장 변화와 충돌하지 않도록 민간의 유연성을 보완하는 장치도 함께 갖춰져야 합니다. 재정 지원 강화, 조합 외 시행자 다양화, 금융기법 확대 같은 후속 과제들이 제도적으로 뒷받침될 때, 신속통합기획은 '빠른 시작'을 넘어 '빠른 완성'의 도구로 자리잡을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참고: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8/0005257120?sid=110